예레미야 26장 17절 예레미야
[단독자 몇 사람]
*잠깐묵상 | 예레미야 26장
"그러자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기를"(렘 26:17)
위급한 순간에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이상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누군가가 먼저 움직이기 전까지 미묘한 공백이 발생합니다. 개인이 군중 속에 있을 때 책임감을 훨씬 덜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조직이 거대화되는 과정에 반드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예레미야가 죽음을 앞두고 있던 그날, 성전 마당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사장과 거짓 선지자 몇몇의 목소리가 군중을 사로잡았고, 군중은 침묵으로 그들에게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예레미야는 '죽일 놈'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몇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장로 중 몇 사람이 나섰습니다. 그들은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제시하며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차분히, 그러나 담대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는 획일적인 분위기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정말 죽을 죄인인가?’라고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격동의 시대마다,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가치를 지켜냈던 몇 사람의 덕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보고 있습니까? 우리가 당연하게 쓰고 있는 한글은 저절로 지켜진 것이 아닙니다. 일제가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려던 암흑기에 이극로 선생과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상이 교회를 집어삼키고 있었던 시절, 아타나시우스는 예수님과 하나님이 동일본질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와 고난을 겪었지만 그는 45년 동안이나 외로운 싸움을 벌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일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가지면 군중이 아니라 개인이 됩니다. 단독자가 모여야 진정한 공동체가 탄생합니다. 단독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군중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단독자 몇 사람을 찾으십니다. 다수의 군중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교회를 다녀도 그저 군중 속에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당시 제사장과 거짓 선지자의 목소리에 동조했던 군중들,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덩달아 분노하고 덩달아 움직이고 덩달아 몰려가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단독자일까요? 모두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기는 무리 속에 나도 있었다면 나는 과연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잠깐묵상 오디오듣기⬇)
https://youtu.be/Ji5hChcfzQs?si=BPPg1vaoDpwIX9u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