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의 경주를 위한 레슨
예레미야 12장 5절 예레미야

[말과의 경주를 위한 레슨]
*잠깐묵상 | 예레미야 12장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렘 12:5)

고향 사람들의 살해 음모를 알게 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따지듯 물었습니다.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렘 12:1)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악인들이 형통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람과 달리기를 해도 피곤하면,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보행자와의 경주는 힘겹지만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람의 싸움입니다. 어느 정도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그러나 말과의 경주는 전혀 다른 차원 아니겠습니까? 지금의 어려움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차원이 다른 환난이 다가올 텐데,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뭘 호들갑이냐고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대해 가르치는 선지자마저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이성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마치 헬스장에 놓인 다양한 무게의 덤벨들처럼, 우리 삶에는 크고 작은 부조리들이 즐비합니다. 혹시 나는 “이건 왜 이렇게 무거운가?” 따지고만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적은 무게의 덤벨을 한두 번 들어보고는 무겁다며 투덜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커다란 덤벨을 가리키십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지금부터 그러면 저건 어떻게 들려고 그러느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근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작은 무게의 고난부터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힘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근섬유가 끊어지고 찢어지는 고통과 더불어 길러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동안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악한 자가 왜 형통하는지, 부조리한 일들은 왜 일어나는지 하나님이 설명해 주신들 우리가 다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그걸 이해한다고 해서 고난이 저절로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난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이해보다 고난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요?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왜 주어졌는지 끝내 알지 못했지만, 그는 가시를 지닌 채 은혜로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모든 것에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레슨은 우리의 질문을 바꾸어 놓습니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가?“보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고난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지 않고 미래에서 찾는 훈련, 이것이 하나님의 레슨입니다.

(잠깐묵상 오디오듣기⬇)
https://youtu.be/oTsxHIjBOlY?si=Az3JTuNEyzam-OQa

ddujju 작성 2025-08-18 16:53
수정 2025-08-18 16:53